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19. 19世 〉8. <요재공>석현배남양홍씨부인행록(奭炫配南陽洪氏夫人行錄)
1. 문헌 목록 〉19. 19世 〉10. <요재공>사림공휘춘영묘갈명(士林公諱春榮墓碣銘)
1. 문헌 목록 > 19. 19世 >  
9.<요재공>석현배효열부숙부인남양홍씨기적비명(奭炫配孝烈婦淑夫人南陽洪氏紀蹟碑銘)
(요재공후)19世석현(奭炫)配 효열부숙부인남양홍씨기적비명(孝烈婦淑夫人南陽洪氏紀蹟碑銘) 昔方靈皐氏有以孝烈事請文字者必書之不辭盖嘆民之興於行者少也近有玉川趙斗鉉鈔其祖母之行介其族東潤請余紀蹟之文按其狀夫人南陽洪氏廷燮女文正公彦博后夫人性敏姿粹持身端潔事親如奉玉無一疾言遽色年十八歸雪松趙公諱奭炫時夫人王舅己歿王姑甞臥褥起居須人夫人湯藥而甞之除穢而滌之且雪松公嬰疾累月不起多方醫治無少效夫人深憂之忽夢差媼攪之曰病急至此尚睡眠爲耶用雉乃可適夜深雪積出家園後麓數十歩雉伏林下得以供之既而丙寅洋擾起雪松公以公事方在完府聞京師敗憤懣成疾而歸夫人昕宵望王事之成祝夫疾之弭祈天甞糞無所不至竟棄世夫人即欲自裁幡然悟曰與其下從孰若承夫君之志也躬檢喪葬之節奉舅姑益誠育諸子成就之或勸昏兒富夫人峻責曰昏須相敵乃無後患甞著家訓五篇語皆切剴又勤紡績勢漸饒當丙子大荒謂諸子曰獨享飽暖而不恤族戚鄰里與禽獸奚異乃均施之本倅金胤鉉薦夫人之孝而賞之按使李相冕與除烟役及庚戌倭以優老典送物夫人輒技地摽使者曰吾寧讎虜饋耶享年八十七丁巳卒鄉里莫不嘖嘖頌其賢雪松公有 贈爵夫人亦隨之嗚呼歷數古今婦女事行有以孝名或有以烈著且或有以貞淑再閨德聞矣誰有如洪夫人之數德兼美者也將立石于祝壇得雉之處欲表之余嘉夫人之事行而爲之銘銘曰憂夫疾願自代受託孤使成就臨取舍固自守當歉荒廣賑救廉耻道喪淪溺皆是滿朝搢紳豈不顙泚 光復 後 初辛酉 穀雨節 長興 魏啓道 撰 (요재공후)19世석현(奭炫)配 효열부숙부인남양홍씨기적비명(孝烈婦淑夫人南陽洪氏紀蹟碑銘) 옛날제(方靈皐氏)는 효와 열행의 사실로써 글을 청하는 자 있으면 반드시 사양하지 않고 써 준 것은 대개 백성들이 행하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근세(近世)에 옥천 조두현(趙斗鉉) 씨가 그 조모님의 행적을 초하여 기적의 글을 나에게 청하므로 그 기록한 것을 살펴보니 부인(夫人)은 남양홍(南陽洪)씨 정섭(廷燮)의 따님이요 문정공(文正公) 언박(彥博)의 후손이었다. 부인(夫人)은 성질이 민첩하고 자세가 순전하였으며 몸가짐이 단정하고 정결하였으며 빠른 언사와 창졸한 기색이 없었다. 부모(父母)를 섬기되 보옥같이 받들어 십팔세(十八歲)에 설송(雪松) 조공(趙公) 석현(爽炫)에게 우귀하였는데 시아버님은 이미 별세(別世)하셨고 시어머님이 병상에 누워 계셔 사람을 의지하여 기거하시니 부인(夫人)이 약을 다리면 먼저 맛보고 추한 것을 제하야 깨끗이 하였고 또한 설송공(雪松公)이 병들어 여러 달 알지 못하시니 다방으로 치료하여도 차효 없으매 부인(夫人)이 심히 걱정하던 차 문득 꿈에 한 노인(老人)이 흔들어 깨우며 가로되 병이 급한데 잠만 자고 있는가 꿩을 쓰면 나으리라 하는지라. 마침 밤은 깊고 큰 눈이 쌓였는데 집 뒷산 기슭으로 수십 보 올라가니 숲풀 아래 꿩이 엎드려 있으므로 구하여 공진하여 큰 효험을 얻었다 마침 병인양요(丙寅洋擾)를 당하여 설송(雪松)이 공사로써 전주(全州)에 계실 때 아군이 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분을 못 이겨 병(病) 되어 집에 돌아오시니 부인(夫人)이 주야로 나라일이 잘될 것과 부군(夫君)의 병이 회복될 것을 하늘에 축원하고 약을 썼으나 마침내 세상(世上)을 버리시니 부인(夫人)이 자진코저 하다가 깨달아 가로되 남편을 좇아 죽는 것보다 차라리 부군(夫君)의 부탁을 이어 받음이 옳다 하고 몸소 초상과 장례를 간검하여 마치고 시어머님을 받들어 정성을 다하였고 아들을 키워 성장하니 부가(富家)에 혼인하라 권한 자 있으면 부인(夫人)이 꾸짖어 가로되 혼인은 상적하여야 후한이 없다 하고 거절하였다. 일찍 가훈(家訓) 다섯 편을 저술하였는데 말씀마다 간절하고 근리하였으며 질삼을 부지런히 하여 가세가 넉넉하였다. 병자(丙子)년 대흉(大凶)을 만나 아들을 불러 가로되 나만 따숩고 배부르며 가난한 일가와 이웃들을 구제하지 않으면 짐승과 같다 하시고 고루 나눠 주게 하니 군수 김윤석(金胤錫) 씨가 부인(夫人)의 행실을 포상(褒賞)하였고 인사 이상면(李相冕) 씨가 연역(烟役)을 면제하였다. 경술년(庚戌年)에 왜인이 우로전(優老典)을 보내며 부인(夫人)이 땅에 던지며 사자를 처 가로되 내 어찌 원수놈의 은전을 받겠느냐 하셨다. 八拾七才에 별세하시니 향리에서 그 어지심을 칭송과 설송공에 벼슬을 주고 부인도 수작(受爵)하였다. 아! 고금을 헤아리면 부녀자의 행적은 대개 효행과 또는 열행이나 정숙한 귀범으로 영네가 전하였거늘 그 누가 홍 부인과 같이 여러 가지 미덕을 겸한 분이 있겠는가? 이제 꿩 얻은 터 축단에 입비하여 표하게 됨을 내 또한 가상히 여겨 새기되 부군(夫君)의 병에 가름할 것을 원하였고(憂夫疾願自代) 고하를 부탁받아 선취하였으며(受託孤使成就) 주고받는데 임하여 지킬 바를 굳혔고 흉년을 당하여 고루 구제하였으니(臨取舍固自守 當歉荒廣賑救) 엄치와 도의가 무너져가는 이때인데(道喪淪溺皆是) 이 세상 선비들이 어찌 이마에 땀이 안 나겠는가(滿朝搢紳豈不顙泚) 광복후(光復後) 신유(辛酉) 곡우절(穀雨節) 장흥(長興) 위계도(魏啓道) 찬(撰)
 
1. 문헌 목록 〉19. 19世 〉8. <요재공>석현배남양홍씨부인행록(奭炫配南陽洪氏夫人行錄)
1. 문헌 목록 〉19. 19世 〉10. <요재공>사림공휘춘영묘갈명(士林公諱春榮墓碣銘)